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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월간 듀오 시리즈 전세윤, 김민재

오늘 프로그램은 음악적으로 대척점에 놓인 네 작곡가의 내면적 실체를 탐구하는 작품들을 선정했습니다. 특별히 금일부터 갤러리 디 아르떼 청담에서 개최되는 전시 '내면적 실체 리바이브 파트 투'의 기조 '실체'는 작품을 통해 개인의 고유성을 발현하는 데 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께서도 갤러리 작품 뿐 아니라 오늘 연주되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내면적 실체를 마주 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번 듀오 시리즈에서는 드뷔시와 라벨, 그리고 브람스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을 만나볼 텐데요, 먼저,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명의 작곡가 드뷔시와 라벨을 알아보겠습니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드뷔시와 명확한 구조와 완성도를 추구한 라벨의 음악을 통해 작곡가의 내면적 실체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시와 문학에 심오한 애착을 지녔던 드뷔시는 그의 고유한 감정을 문학을 매개로 작품 내에 투영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시는 단순한 표제를 넘어 음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지침과 같았습니다.
반면 라벨은 숙련된 장인과 같이 절제된 감각과 세련된 아이디어를 통해 음악을 전개했습니다. 그는 동시에 동화, 발레 및 시각 예술에서 주요한 영감을 얻었습니다. 신중하고 객관적인 성향으로 기교와 형식을 중시하는 고전적 형태를 추구하였습니다.
이어지는 두 명의 독일 출신 작곡가, 브람스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전통의 수호자와 미래의 개척자로 대비될 수 있습니다. 신 앞에 겸허한 기독교적 정서를 추구한 브람스는 고전주의의 외투를 두른 낭만주의자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베토벤의 순수음악 전통을 이어 음악의 구조적 완성도와 내면적인 묵상을 통해 그의 음악적 이상을 구현했습니다. 이에 반해 슈트라우스는 문학이나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표제음악을 거대한 규모의 관현악 편성과 감각적인 색채 그리고 파격적인 화성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니체와 프로이트로 대표되는 표현주의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인간의 극단적인 감정과 심리를 표현했습니다
. 드뷔시 Petite Suite L.65
드뷔시의 작은 모음곡은 19세기 말 벨 에포크 시대의 풍요로운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인상주의 미술과 상징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작품입니다. 이 곡은 Four Hands, 즉 하나의 피아노를 위한 연탄곡으로 작곡되었습니다.
En bateau (뱃놀이), Cortège (행렬), Menuet (미뉴엣), Ballet (발레)의 총 4악장으로 구성됐습니다. 각 악장은 섬세한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선율과 화성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첫 곡 '뱃놀이'는 잔잔한 물결 위를 항해하는 작은 배를 연상시키며 마치 인상주의 화가모네의 작품을 보는 듯 합니다. 두 번째 곡 '행렬'은 베를렌의 시집 'Fêtes galantes (우아한 향연)'에서 제목을 차용했으며, 차분하고 우아한 리듬과 때로는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즐거운 퍼레이드를 연상시킵니다. 이어지는 세 번째 곡 '미뉴엣'은 전통적인 3박자 리듬에 드뷔시 특유의 색채감이 돋보이며, 과장되지 않은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은은하고 우아한 로코코 스타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지막 '발레'는 활기차고 명랑한 분위기의 피날레로,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곡을 마무리합니다. 드뷔시의 음악은 청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하며, 각 악장의 분위기와 부제를 통해 더욱 풍성한 음악적 경험을 하시길 바랍니다.
브람스 16 Walzer Op. 39
브람스의 16개의 왈츠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열풍에 대한 고전주의적 응답으로 작곡되었습니다. 브람스 특유의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왈츠의 우아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작품 입니다. 당시 피아노 연탄곡의 인기와 더불어 대중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았으며, 브람스의 피아노 음악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곡입니다. 이 곡은 오스트리아 민속춤인 렌틀러의 영향을 받아 독일 낭만주의의 절제된 정서와 민속적인 색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왈츠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렌틀러는 남녀 한 쌍이 추는 춤으로, 원을 그리며 회전하거나 서로 마주보며 스텝을 밟는 등 다채로운 형태를 지닙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화려함과는 달리, 브람스 특유의 서정적이고 깊이 있는 감성이 곡 전반에 배어 있으며, 브람스 자신은 이 왈츠들을 "슈베르트 풍의 소박한 작은 왈츠"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고전적인 형식이 두드러지는 이 작품은 당시 산업화로 급변하던 사회 속에서 예술이 감정의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는 브람스의 예술관을 반영합니다. 일상 속 소소한 낭만과 절제를 통해 발현되는 브람스의 인간적인 온기를 음악을 통해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라벨 Ma Mère l'Oye
라벨은 친구의 어린 자녀들을 위해 프랑스 고전 동화에서 영감을 받은 '어미 거위 이야기'를 작곡했습니다. 완성된 곡은 친구의 자녀들이 연주하기에 난이도가 높아 프랑스의 저명한 피아 니스트 마거릿 롱의 제자들이 초연했습니다. 첫 번째 곡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파반느'는 느 리고 우아한 리듬으로 잠든 공주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어지는 '엄지둥이 (Le Petit Poucet)'는 숲 속에서 길 을 잃지 않으려고 빵 조각을 뿌려 놓았으나 새들이 모두 먹어 치웠다는 동화를 모티브로, 길 을 잃은 아이의 불안함과 숲 속의 미묘한 움직임이 자아내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 다. 세 번째 곡 '파고다의 여왕 레드로네트 (Laideronnette, impératrice des pagodes)'는 마법에 걸려 얼굴이 흉하게 변한 아름다운 공주가 탑에서 목욕할 때 도자기로 만든 인형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동양의 5음 음계에서 차용한 선율과 영롱한 악기들의 조화가 이국적인 향취를 자아냅니다. 네 번째 곡 '미녀와 야수의 대화 (Les Entretiens de la Belle et de la Bête)'는 흉측한 외모와 달리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야수와 미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아름다운 선율과 웅장한 저음을 통해 두 인물의 내면적 교감을 드 라마틱하게 그려내며 감동적인 사랑의 순간을 포착합니다. 마지막 곡 '요정의 정원 (Le Jardin féerique)'은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 공주가 왕자의 입맞춤으로 깨어나는 장면을 묘사하며, 왕자의 입맞춤과 함께 숲의 모든 생명이 깨어나 희망과 행복으로 마무리됩니다. 라벨의 '어미 거위 이야기'는 단순한 동화적 상상력을 넘어, 어린 시절의 순수한 감수성을 어 른들의 마음속에 되살려주는 작품입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Salome Op. 54 - Dance of the Seven Veils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는 20세기 초 유럽의 데카 당스적 감성을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데카당스 (Décadence)'는 프랑스어로 '쇠퇴', '퇴폐'를 의미하며, 기존의 사회적 규범, 도덕, 낭만주의의 이상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하여 세기말의 불안감과 허무주의를 반영하는 특징을 지닙니다. 병적이고 인위적인 아름다움, 기괴하고 퇴폐 적인 주제, 그리고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을 예술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합니다. 오페라 '살로메'에서 세례 요한에게 사랑을 갈구하다 거절당한 살로메는 숙부이자 의붓아버 지인 헤롯왕 앞에서 관능적인 음악에 맞춰 일곱 개의 베일을 하나씩 벗어 던지는 춤을 선보입 니다. 춤이 진행될수록 살로메의 자태는 점차 에로틱해지고, 헤롯은 그녀의 매혹적인 춤에 완 전히 사로잡힙니다. 춤이 끝나자 헤롯은 약속대로 살로메에게 소원을 묻고, 살로메는 망설임
없이 세례 요한의 머리를 은쟁반에 담아올 것을 요구합니다. 이 곡은 극적인 도입 이후 은밀 하고 유혹적인 분위기로 시작합니다. 춤이 진행될수록 격렬하고 광적인 분위기로 고조됩니다. 이는 살로메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욕망과 파국을 향해 치닫는 극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반영 합니다. 오페라 전체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Leitmotiv (유도 동기)가 이 장면에서도 변형 되어 나타나며, 이를 통해 살로메의 심리 상태와 극의 긴장감을 심화시킵니다. '일곱 베일의 춤'은 오페라 '살로메'의 핵심 주제인 욕망, 광기, 죽음의 불가피성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특히 후기 낭만주의 거장 슈트라우스의 혁신적인 음악은 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증폭시키며, 조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전개를 통해 살로메의 위험한 아름다움을 형상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