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이 집과 특별한 기억이 있나요?
이 집을 오간 아름다운 사람들 그리고 치유된 사람들
이 집에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 곳곳에 오랜 벽화들이 보였어요. 석고 장인과 함께 1875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죠. 파리에서 온 제자는 석고 꽃을 다시 조각했고, 한 유대인 피아니스트는 이 집에 자기의 피아노를 남기고 갔어요.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들었던 유대인들의 장송가를 제게 들려주었고, 노래는 아직도 제 마음을 떠나지 않아요. 이 집을 지나간 이들의 아름다움들은 지금도 그때처럼 생생히 느껴요.
그리고 이 집에는 특별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한 명은 전쟁 후 알코올 중독, 명은 전쟁 포로 출신으로 강박 장애, 또 한 명은 조현병으로 사람들에게 침을 뱉는 여성이었어요.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을 쫓아낼 수는 없었어요. 그들은 모두 이곳에서 마지막을 맞이했죠. 병 수발부터 식사 관리까지 모두 제가 했어요. 그분들 중 한 분은 제게 "이곳을 떠나지 않아도 되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죠.
이 집은 단순히 건물이 아니에요. 이 건물은 나의 인생과 시간 같아요. 언젠가 팔게 될 때 혹여,10만 유로 손해 보더라도, 이 집을 사랑하고, 끝까지 아껴줄 사람에게 넘기고 싶어요. 그게 내가 이 집에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에요.
저자의 덧붙임: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 특별한 공간은 그와 그를 지나간 이들의 삶의 기록이며 사랑과 책임, 그리고 돌봄의 상징이다. 어머니의 생애 마지막까지 함께했고, 아팠던 세입자들을 끝까지 지켜냈으며, 지금도 수많은 제자들과 나까지 함께 그 안에서 시간을 나눈다.
anke 선생님의 레슨실
Q. 80세가 넘은 지금도 여전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세요. 비결이 있다면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전 아마 타고나길 교육자 기질이 많은 것 같아요. 언젠가 심리학자에게 상담을 받았을 때 그 사람이 내게 말하더군요. “당신은 분석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어요.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지만, 교육과 심리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당신은 심리학자가 아니니까,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때만 다가가세요.”
나는 새로운 학생을 만나면 그 아이의 강점과 약점을 금방 알아차려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약점을 다루며 수업을 해요. 상처 주지 않도록 늘 조심하죠. 성인학생들은 늘 말해요. “선생님께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라고요. 그게 내가 바라는 최고의 칭찬이에요.
저는 지금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을 더 많이 가르쳐요. 생각보다 어른들은 불안과 두려움이 많아요. “나는 잘 못할 거야”, “외울 수 없을 거야”라는 생각에 갇혀 있죠. 그럴 때마다 저는 그들에게 말해요.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다만, 어린이와는 다른 언어로 말할 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강조하는 건, 연습하는 기쁨이에요. “연습이 즐겁지 않으면, 음악은 지속될 수 없어요.” 한때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늙어서 제자를 잃으면 어떡하지? 이 큰 집은 어떻게 하지?” 하지만 그런 걱정은 현실이 되지 않았어요. 학생들은 계속 찾아왔고, 지금도 젊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늙거나 어른이 되는 건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anke의 강아지 버디
Q. 삶을 단 몇 마디로 표현한다면요?
나는 나의 삶에 아주 만족스러워요. 힘든 유년 시절도 있었지만, 덕분에 성숙해질 수 있었고, 지금은 내 동물들, 식물들, 이 집과 함께 정말 풍요롭다고 느껴요. 사치, 돈이나 여행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중요한 건, 내가 지금도 외롭지 않고, 창의적인 일에 몰두하며 정신적으로 살아 있다는 거예요. 나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삶도 알지 못한다’ 고 생각해요. 27살에 남편을 잃고부터 나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라는 의사가 아이들의 죽음을 연구한 이야기도 큰 영향을 줬죠. 죽음을 마주한 아이들이 오히려 부모를 위로할 만큼 용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오래도록 죽음을 공부했어요.
그 결과, 나는 지금 이 삶을 목표로 삼고 살고 있어요. 나는 정신적으로 늙는 건 원하지 않아요. 늘 살아있기를 원해요. 누구도 내 생기와 젊음을 빼앗게 두지 않을 거예요.
Q. 제가 선생님이 만난 첫 번째 한국인인데, 어떤 인상을 받으셨어요?
다른 한국인이 어떤지는 만나봐야 알겠지. 너는 참 조용하고 안정된 사람이야. 스트레스가 아니라 평온함을 주는 사람. 너와는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사람이 되어줘서 고마워. 정말 좋은 사람이야.
Q. 마지막으로 젊은 음악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Kindlichkeit beschützen. Und Still bewahren
마음속 아이를 꼭 안고 살아가세요. 고요함을 아는 사람, 삶을 부드럽게 그려갈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어른이 되어도, 호기심과 감수성을 잃지 마세요.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고요함을 간직한다면, 삶은 훨씬 더 깊어질 거예요.
그 감성을 지켜낼 수 있다면,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거야(웃음).
그리고 언젠가 오케스트라를 떠난 후엔 음악을 가르치는 마음 따뜻한 스승이 되었으면 좋겠어.
글 정원철 / 편집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