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늘 / 투영 /캔버스에 아크릴, 핸디코트 / 60x50 / 2021 / 800,000
하늘 / 어림 /캔버스에 아크릴, 핸디코트,레진 / 100x73 / 2025 / 800,000
김하늘 / 수치 /캔버스에 아크릴, 핸디코트,레진 / 100x73 / 2024 / 800,000
김하늘 작가 노트
나를 설명하는 글을 쓰고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실존주의’이다. 실존주의 철학을 깊이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껏 짧지 않은 삶의 순간들과 나의 가치관을 돌아보면 결국 모든 것은 내 실존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되곤 했다.
나는 감정을 단순히 느끼는 것을 넘어, 그것을 언어와 이미지로 구조화하여 존재를 증명하려는 사람이다. 내 안에서 감정은 곧 기억이고, 기억은 나를 이루는 뼈대가 된다. 나는 사건보다 그 사건이 남긴 감정의 결을 오래 곱씹고, 그것을 글이나 작품으로 풀어내려 한다. 감정과 사고를 동시에 다루는 힘은 내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축이다.
내 삶에서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는 오기다. 그 오기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결국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태도로 이어진다. 나는 과거의 선택들을 후회하면서도, 동시에 그때의 최선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순간들을 끌어안으며 더 나아가고 싶다. 선천적인 존재의 부정이나 이별의 경험은 여전히 내 결핍과 후회로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나아가 ‘자신을 기만하지 않는 태도’로 이어졌다.
나는 예술을 단순히 결과물로 환원하지 않는다. 나에게 예술은 살아가는 감정의 리듬이자,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내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나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후회와 결핍, 불완전함을 경험해왔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이 내 작업의 출발점이 된다. 나는 완성된 의미를 내세우는 대신, 미완결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내 작품은 자기표현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재구성되기를 바란다. ‘내가 누구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연결하는가’와 같은 질문은 내 작업이 반복해서 건드리는 지점이다. 예술이란 타인에게 답을 강요하는 장치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안의 세계를 마주하도록 이끄는 질문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작품은 나의 내면에서 비롯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는 관람자의 것이 되고, 또 다른 해석과 이야기를 낳는다.
나는 나의 작업에서 기억과 관계, 그리고 존재의 정직성을 중심에 둔다.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실존을 구조화하는 토대인 게다. 관계는 나를 살아 있게 하는 동시에 무너뜨리는 힘이며, 그 모순적인 긴장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리고 정직성은 그 흔들림을 외면하지 않고 작품으로 드러내려는 태도이다.
나는 이런 모순된 자아와 관계를 ‘경계의 침범’으로 나타낸다. 직선과 곡선, 어긋남과 정제됨 속에서 실존의 구조화를 탐구한다. 나 자신 안에 경계, 타인과의 경계, 현실과 꿈의 경계, 세상과 우주의 경계 등 우리 사이엔 닿으면 내 몸이 불타사라질 듯한 선이 존재한다. 그 선의 침범은 직설적이기보다 유연하게, 단순하기보다 견고하게, 조심스레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다.
핸디코트를 이용한 반입체작을 전개하는 것도 비슷한 의미에서 시작된다. 핸디코트는 거칠게 바르는대로 거칠어지고, 심열을 들여 부드럽게 칠하면 그에 따라 변형이 가능하다. 이는 경계의 침범을 나타내기에 효과적인 방법이고, 나는 핸디코드를 바를 때 큰 계획을 세우지 않고 위치, 텍스쳐감만 고려하여 오직 내 손끝을 이용하여 바른다. 이러한 소재 특성과 기법은 작품의 소재가 내 몸과 하나됨으로 이해하고 작품에 영혼을 깃들게 하는 방법이다. 결과적으로 물체(사물)와 인체라는 인식적으로 반대되지만 실존적으로 같다는 내 철학과 맞물려 한 순간에 예술과 삶의 한 가운데에 존립할 수 있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결국 “무엇을 만들 것이냐"보다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에서 출발한다. 나의 작품은 단순히 외형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과 삶의 내러티브를 건드리는 언어이기를 바란다.
작품 이해를 위한 별도의 설명
1. 투영- 손과 거울의 테두리 등을 이용하여 작품 속 공간을 3등분 했다. 한쪽은 사람의 내면, 한쪽은 현실, 한쪽은 본인도 모르게 자라고 있는 부정적 감정이다. 서로가 서로를 침범하여 정신적, 심리적 균형과 안정을 깨지 않도록 하지만 무의식중에 망가지는 사람의 모습을 표현했다. 작품의 제목처럼 이 그림 전체는 작품을 보고 있는 사람의 모습, 마음, 무의식을 투영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감추거나 깨닫지 못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어내지만 “모든 사람은 여러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며 그것에 회의감을 느낄 필요 없다.”라는 위안과 격려의 의미 또한 내포되어 있다. 곽덕준<심연II> 참고, Edward Hopper<Morning Sun> 오마주
2. 어림- 숨쉬는 것도 벅차고 의미를 찾기엔 너무나 힘겨운 삶일지라도, 그것은 의미없는 삶이 아니라 당신이 그 물 밖으로 나가는 것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당신은 그 속에서 당신만의 숨을 쉴 것이니.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열망이 아니라, 목적조차 잃은 상태에서도 멈출 수 없는 내면의 진심. 힘껏 몸부림치고 당신의 실존에 질문하고 의미없는 당신의 삶에서 무너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생존 호흡이다.
3. 수치- 그리움은 동굴이고 수치심은 횃불이다. 기억을 마주한다는 건 미련이나 나약함에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한 용기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용기에 매일을 상처받고 상처주곤 하지만 그런 거름망을 거쳐 삶의 동기가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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