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목소리
박지윤 / 애호를 새긴 눈알 / 2024 / 캔버스에 유채 / 60.6 × 50 / 480,000
좋아하던 것을 말 그대로 새기게 된 눈알을 그려준다. 이 말도 안되는 듯한 이야기는 땅에 묻혀 잘게 조각나는 순간이라면, 그리고 압축적이고 물질적인 회화의 언어를 빌려 말한다면 그럴 듯해질지 모른다. 홍채와 핏줄처럼, 혹은 꽃의 모양처럼 덧발리고 또 긁어진 선들은 형태를 만들면서 동시에 부수어 내기를 오가고 있다.
박지윤 / 멍든 혀의 지도 / 2024 / 캔버스에 유채 / 65.1 × 53 / 600,000
멍들고, 상처 나고, 곪은 흔적들이 피어날 때에 바탕의 구조는 존재감이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표피의 자국들로 뒤덮인 기관은 어느새 정체를 식별하기 곤란해지고, 나아가 다른 무언가로 비추어질지도 모른다. 물리적 손상 뿐 아니라 내뱉는 말에서도 자국이 남는다면 어떠할지를 상상했다. 그렇게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얼룩졌을 어떤 혀의 표본을 그렸다.
< 작가 노트 > - 박지윤
이것이 저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얼마나 어처구니없으면서도 마땅한 이야기인가. 하나의 정체성이 복수로 나뉘게 될 때에 그것은 사실과 가치 판단 모두에 곤란을 초래한다. 고정된 단일체로 대상을 이해하는 시각이 보편화되어 있는 것은 복합성이 초래하는 현기증에 대해 마비되려는 목적을 포함할 테다. 나는 그 마취의 정도를 기꺼이 약화시키는 순간들을 만들고자 애쓴다. 그렇게 분화와 변동을 전제하는 대상에 대한 감각을 한껏 활성화하기를 바란다. 먼 훗날 땅에 닿은 나의 발이 조각나 짐승의 발톱으로 재조합될 순간을 상상한다. 어쩌면 그것은 재가 되어 순환하기 이전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일지 모른다. 피부 안팎에서 선과 점처럼 새겨지는 신경통이 내 몸이 겹겹으로 얽혀 있음을 일러줄 때, 모르는 새에 부러졌던 뼛조각이 이상한 모양새로 자라 붙었던 나의 발등을 발견했을 때 내게 이러한 공상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말들 뒤에서 그렇지 못한 입들을 마주하는 순간들은 어떠한가. 환히 빛나는 발화 속에서 불씨들은 매순간 매캐한 재가 되는 중에 있다. 이러면서 동시에 저러는 순간들에 수없이 놓여 있는 탓에 어느덧 단일하고 불변적인 진리라는 것들은 종종 허황된 명칭을 걸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기에 분열, 모순, 충돌과 변화의 지점을 주목하고 이야기하려는 일은 도리어 세심하게 진실되어 보려는 노력이다. 고정된 궤적에서 미끄러질 때에,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하는 미결의 대상이 되는 시점에, 그것은 단단히 정의된 약속에서 벗어나 현존하는 물질로서 서 있을 수 있게 된다. 연약하기 그지없는 다리로 바들대며 떨고 있는 모습일지라도 말이다.
회화는 그것이 지닌 닮음의 원리와 물질성으로 하여금 분화의 광경을 빚어보기에 좋은 장이 된다. 나의 이미지들은 그려진 획들에 잔뜩 빚진다. 붓질이 가지는 임의적인 지시성은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중첩을 가능하게끔 돕는다. 구불거리는 선을 그으면 그것이 가까이서 들여다 본 피부의 결도, 멀찍이서 조망한 산맥도 될 수 있는 약속의 연약한 틈을 나는 극대화하여서 열심히도 이용한다.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한 모양새는 희망적 기대나 비겁한 도망 모두를 가능하게 해 주어서, 불안정한 대상이 새겨지기에 안성맞춤인 자리가 된다. 펼쳐진 스펙트럼 속 어딘가에 존재할 한두 개의 가설, 망상이거나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르는 것, 시작과 결론 사이의 중간 상태, 기존의 수단으로 정돈하기 어려운 감각을 굳이 집어서 올려놓고 이에 관해 횡설수설 떠들어보는 것이다. 곱씹는 중얼거림의 태도가 한껏 서린 붓질의 제스처는 그리는 과정 중에 그것을 더 잘게 부수어 낸다. 수십 번을 연달아 소리 낸 단어가 더 이상 그것이 아니게 되는 것 마냥, 매끈하던 덩어리와 굳게 약속됐던 기호는 잘게 와해되며 어느새 이변의 맥락들 속에 놓이게 된다. 그렇게 분화를 초래하는 획은 곧 알갱이들의 진행을 어렴풋이 점지한다. 긋는 획들은 물감을 덧바르면서도 일부는 닦아내기를 반복하여, 표면에서 물질이 놓인 위아래의 층위와 선후의 관계에 대한 식별을 점차 어렵게 한다. 동시에, 보는 눈을 어지러이 혼란시키는 색과 질감들을 수놓는다. 이것 옆에 놓인 저것이 서로를 해치며 빚어내는 기묘한 감각은 명료한 시각의 포획에 대해 반항적이다. 인식의 기준이 되는 형을 부수며, 단번에 붙잡히지 못한 화면은 결국 다양한 층위에서 미세한 움직임의 가능성을 깃들여 놓는다. 고정된 듯싶던 그림 위에서 유동하는 감각을 발견할 여지를 가늠하면서, 나는 그렇게 상함과 동시에 덧대어지는 가능성들을 목격하고 증언하려 애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