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목소리
김해진/아빠, 미안해!/73x91cm/acrylic on canvas/2025
김해진/아빠, 미안해! Ⅱ/63x71cm/acrylic on canvas/2025
작가노트 | 김해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상처를 입습니다. 그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고, 흉터가 되어 시간을 품습니다. 아프고 괴로웠던 시간들은 고스란히 내 안에 쌓였고, 그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나는 늘 ‘~로서’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맏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강사로서, 봉사자로서… 많은 역할과 책임 속에서 충실히 살아냈지만, 문득 어느 날 나는 그 모든 이름들 아래에서 무너져 내렸습니다. 삶은 열심히였지만 마음은 비어 있었고, 의무는 있었지만 권리는 없었으며, 나는 과연 누구인지, 행복할 자격은 있는지 되묻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은 그 시절 나의 숨구멍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역할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었고, 그 시간이 모여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그림은 상처받은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은신처였고, 그 안에서 나는 나를 회복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내 작업의 출발점은 언제나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그림이 배고픈 이에게 따뜻한 밥이 될 수 있는가?”
“그림이 절망한 자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가?”
나는 이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며, 화가로서의 삶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서, 삶 그 자체를 살아내는 일입니다. 나의 그림에는 내가 지나온 시간과 감정의 결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으며, 그 안에는 고통과 상실, 화해와 치유,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나는 색을 통해 마음의 풍경을 회상합니다.
푸른색은 막연한 꿈과 같은 감정, 녹색은 든든한 위로, 빨강은 강렬한 열정을 품고 있습니다. 이처럼 색채는 나의 기억과 감정을 되짚는 도구이며, 익숙하면서도 늘 새로운 감정의 문을 열어줍니다.
나의 작업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마음속 어딘가를 따뜻하게 덮어주는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림으로 치유되었듯, 다른 이들도 나의 그림을 통해 조금은 괜찮아지기를, 그렇게 삶의 단단한 위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