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만남/Acrylic and Oil pastel on canvas/우리은행 1002165535207/65 x 53/2025/10,000,000
박지현/축복/Acrylic on canvas/우리은행 1002165535207/41 x 61/2025/800,000
박지현/존재/Acrylic and Oil pastel on canvas/우리은행 1002165535207/15 x 15/2023/500,000
박지현/Way/Acrylic on canvas/15 x 15/2023/미판매
박지현/Suitable/Acrylic on Canvas/우리은행 1002165535207/15 x 15/2024/500,000
박지현/자유(自由)/Acrylic and Oil pastel on canvas/우리은행 1002165535207/32 x 41/2025/600,000
단면과 확장성을 반영한 재구성
추상회화는 나에게 언어 이전의, 가장 근원적인 소통 방식이다. 형상을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지만, 그 비형상성 속에서 오히려 감정과 사유, 시간과 존재의 결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붓질 하나, 색의 농담, 캔버스의 여백에 깃든 침묵조차 — 모두 내면의 흐름이 응축된 단면이자, 그 감각이 다른 인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 출발점이다.
작업의 시작은 늘 모호하다. 명확한 틀은 없지만, 그 불분명함 속에서 오히려 진짜 감각이 깨어난다. 손끝에서 일어나는 색의 진동과 레이어의 축적, 우연과 통제가 교차하는 과정 속에서 감정과 기억의 파편들이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나는 그 흐름 속에서 직관과 사유 사이의 균형을 끊임없이 조율하고, 그렇게 나타나는 이미지는 완결된 결과물이 아닌, 특정한 순간의 감각이 잠시 머문 자리로 남는다. 그러나 이 단면은 닫히지 않는다. 감상자의 해석과 경험에 따라,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감각과 의미로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나에게 추상은 단순한 무형상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화된 복잡함 속에서 피어나는 감각의 질서이며, 제한된 구성 안에서 존재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방식이다. 형상의 외피를 걷어낸 자리에 나는 감정과 기억, 존재의 잔상을 조용히 호출하고, 회화라는 매체의 물성과 개념적 가능성을 실험한다.
나의 작업은 응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순간의 감각을 하나의 장면으로 응고시키고, 그것이 감상자의 사유 속에서 다시 열리기를 바란다. 완결된 의미를 제공하기보다, 감정과 사유의 단서를 남기는 것. 그것이 나의 회화가 지향하는 바이다. 붓질 하나하나는 감정과 기억, 그리고 세계에 대한 내적인 반응을 실현하는 행위이며, 나는 그 행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접점을 만들고자 한다.
무엇을 그리는가보다도, 그것이 어떻게 형상화되고, 그 과정을 통해 어떤 감정과 사유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깊은 관심을 둔다. 감상자가 나의 작업 앞에서 자신만의 감정이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같은 시간과 감각의 공간을 공유하게 된다. 나의 회화는 하나의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존재의 흔적 속에서 감상자와 함께 열린 의미를 만들어가는 장(場)이다. 응축된 단면이 또 다른 감각으로 확장되는 경험, 그리고 여운이 오래 머무는 작업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