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목소리
정예린 / 먹히는 것, 압도되는 것 / 캔버스에 유화 / 91 x 116.8 / 2024 / 미판매
정예린 / 먹히는 것, 압도되는 것 / 캔버스에 유화 / 91 x 116.8 / 2025 / 미판매
해파리에게 먹혀, 그 중간이 된 존재 — 저의 작업은 그런 존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항상 자아 없이 떠돌며 흘러가는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운명처럼 정해진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바다에서 물결에 몸을 맡기듯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자유로운 삶을 꿈꾸면서도, 어쩌면 그만큼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얽매임 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해파리가 부러웠습니다. 그 유영하는 모습, 어디로 튈지 모르는 흐름, 그 안에 담긴 독성과 생존 방식은 저에게 하나의 이상이 되었고, 그 이상에 닿기 위해 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해파리에게 잡아먹혀, 그 시야로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상상은 ‘해파리인간’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존재는 해파리의 자유로움과 인간의 자의식 사이에서 갈등하며, 생각의 흐름 속을 부유하듯 살아갑니다. 진화든, 합일이든, 언젠가 또 다른 존재에게 먹히기를 기다리며 자아를 잃고 흘러가고자 하는 욕망과, 그럼에도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생의 본능이 함께 공존하는 상태입니다.
해파리인간의 형태는 인간에 가깝지만, 색감과 분위기에는 해파리의 속성과 정서를 담아냈습니다. 결국 이 작업은 저의 감정, 저의 투영이자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는 하나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