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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작가의 목소리
김은희 / 감각의 흔적은 말보다 늦게 도착하며 No.11 / Acrylic on canvas / 72.7x72.7 / 2025 / 2,800,000
김은희 / 감각의 흔적은 말보다 늦게 도착하며 No.12 / Acrylic on canvas / 72.7x72.7 / 2025 / 2,800,000
김은희 / 감각의 흔적은 말보다 늦게 도착하며 No.13 / Acrylic on canvas / 130.3x97.0 / 2025 / 4,500,000
ARTIST STATEMENT
From the Layered Time 중첩된 시간으로부터
나의 작업은 일상의 반복 속에 숨어 있는 미세한 감각의 결을 따라가는 데서 출발한다.
익숙한 하루의 흐름 속에도 문득 스며드는 낯선 떨림은 감각의 표면에 조용한 여운을 남긴다. 나는
그 여운이 머문 자리를 색과 선, 구조화된 화면의 흐름 속에 기록하고자 한다.
겉보기엔 변함없이 이어지는 일상이지만, 그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전환의 순간들이 끊임없이 포개지고
스며든다. 나는 그 겹침의 결을 좇으며, 시간의 밀도가 감각으로 번져나가는 과정을 회화로 풀어낸다.
수평의 리듬을 따라 놓인 선들은 정적인 구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떨림과 감정의 잔향이 흐른다.
차곡차곡 쌓인 색은 단일한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러 감각이 중첩되어 남긴 자취이며, 마치
하루의 빛이 겹쳐지며 색이 바래듯 시간 또한 그러한 방식으로 화면에 스며든다. 화면에 형성된 레이어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기억과 정서, 감각이 응축된 하나의 구조이자 시간의 단면이다.
작업의 방향은 사전에 정해진 구도보다는 감각이 이끄는 흐름에 가깝다.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도 색과
결의 배치는 매 순간 다르게 반응하며, 그 차이 속에서 새로운 리듬이 생성된다. 이는 들뢰즈가 말한
‘차이 속의 반복’처럼, 유사해 보이는 구조 안에서 매번 다른 감각의 층위가 드러나는 생성의 흐름이다.
나는 아크릴의 특수성에 주목한다. 빠르게 건조되고 얇게 밀착되는 성질은 반복적인 선 긋기와 투명한
색의 층을 쌓는 데 적합하다. 붓의 방향을 따라 얇은 색을 수평으로 올리고, 농담의 미세한 차이를 조율하며
색과 색 사이의 간격을 조밀하게 구성한다. 때로는 미세한 선이 하나의 층처럼 작용하기도 하고, 이전의
흔적을 희미하게 덮어가며 감각의 리듬을 조형한다. 이 과정은 결과를 만드는 기술이라기보다, 감각의
반복과 시간의 축적을 화면에 눌러 남기는 행위에 가깝다.
나는 회화를 통해 사라지는 것을 응시하려 한다. 그것은 과거를 회상하는 기억이기보다 감각의 구조에
가깝고, 명확한 서사보다는 여운에 가까운 내러티브다. 감각의 흔적은 말보다 느리게 스며들고,
언어로는 닿을 수 없는 시간의 여백에 머문다.
그 여백을 따라가는 것이 나의 작업이다. 스쳐 지나가면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시간의 무늬, 그 위에
잠시 머물다 떠오른 감각의 흔적들. 그것이 내가 그리는 세계이며, 내가 감각하는 시간이다.
_작가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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