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목소리
이세은 /덩굴 사회/금속판에 소묘/53 x 33.4 /2025/미판매
나는 어린 시절, 바깥에서는 활발하고 관계에 능숙한 모습으로 지냈지만,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관계 속에서 쌓인 감정에 눌려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 경험은 내 삶이 늘 겉과 속이 어긋난 간극 속에 놓여 있었음을 깨닫게 했다. 사회가 정한 리듬을 따르려 애쓰면서도, 동시에 그와는 다른 흐름이 내 안에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작업은 이러한 경험을 금속판 위에서 반복하는 행위로 드러낸다.
나는 금속판 위에 선을 긋고, 덧입히고, 다시 긁어내는 과정을 거듭한다.
긁어냄은 단순한 제거가 아니라, 그 속에 또 하나의 레이어를 쌓아 올리는 과정이다. 긁힌 결 안에는 새로운 감각이 침전되고, 그 위에 다시 겹쳐진 흔적들은 다층적인 시간성을 담는다.
이러한 표면은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며, 감정이 겹겹이 쌓이고 또 다른 결로 드러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철판을 사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종이나 캔버스처럼 즉각적으로 흡수하지 않고, 천천히 반응하는 금속의 물성 때문이다.
철판은 감정을 서둘러 드러내기보다 오래 머물게 하고, 반복적인 선 긋기와 쌓기를 통해 차츰 반응한다.
나는 이 느린 반응을 감정이 축적되고 다져지는 시간으로 받아들이며, 연필로 그 결을 하나하나 겹쳐 새긴다.
그래서 철판은 나에게 감정을 재빠르게 흘려보내는 매개가 아니라, 충분히 머물고 쌓인 흔적을 통해 감각을 형성하는 장소가 된다.
그 위에 얽히고 뻗어나가는 덩굴의 형상을 더한다.
전봇대를 타고 오르는 덩굴들은 멀리서 보면 질서정연한 하나의 흐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 뒤엉키고 비틀리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나는 이 모습을 통해 겉보기에는 같은 질서 속에 묶여 있는 듯하지만, 실은 다른 길을 향해 나아가려는 개인들의 욕망을 읽는다.
금속판이라는 단단한 표면 위에서 긋고, 덧입히고, 긁어내는 과정을 통해, 겉으로는 단일한 질서 속에서도 여전히 고유한 리듬과 가능성이 형성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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