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희/금빛 항아리 (Gold Moon Jar) / Metal threads, Silk threads On Silk / KB077210678998 / 64cm x 70cm / 2025 / 8,200,000
한승희 / 은빛 항아리 (Silver Moon Jar) / Metal threads, Silk threads On Silk / KB077210678998 / 64cm x 70cm / 2025 / 8,200,000
조용한 구조, 실의 시간—
한승희 작가의 항아리는 전통적 오브제에 대한 단순한 재현을 넘어, 실과 바늘, 반복과 침묵, 감각과 사유의 응축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존재다. 실버와 골드 시리즈는 같은 항아리 형상을 중심에 두고, 상반된 빛의 언어를 통해 서로 다른 시간성과 감정의 층위를 드러낸다.
은빛 항아리는 절제된 명상처럼 다가온다. 회색 실의 정제된 결은 마치 사라지는 숨결처럼 가늘고 투명하게 쌓인다. 거기엔 시간의 흐름보다는 시간의 정지가 있다. 시선은 항아리의 안으로 빨려들 듯 침잠하고, 반짝이지 않으면서도 은근한 존재감으로 화면을 채운다. 이는 마치 찻잔 속 고요한 물결처럼, 안팎이 뒤섞이는 직관의 이미지다.
반면 금빛 항아리는 더 촉각적이고, 더 물리적이다. 작업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이 금빛 항아리는, 화면 위로 뜨겁게 반짝이며 솟는다. 금사(金絲)의 묵직한 질감은 결을 따라 흐르며, 마치 흙이 빛을 품고 발화하는 듯한 온기를 띤다. 그 안에는 ‘쌓임’의 서사가 있다. 손으로 한 땀씩 실을 누비며 작가는 시간을 물성으로 번역했고, 그 반복은 곧 명상의 행위이자 저항의 몸짓이다.
두 항아리는 같은 형상을 공유하지만, 빛의 방식이 다르고, 침묵의 농도가 다르다. 은빛 항아리는 안으로 스며드는 빛, 금빛 항아리는 밖으로 반사되는 온기의 빛이다. 전자는 명상이고 후자는 기억이다. 전자는 시선의 고요한 흐름을 유도하고, 후자는 손끝의 에너지와 축적된 감정을 드러낸다.
이 항아리들은 비어 있지만, 실로 채워져 있다.
무언가를 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담긴 시간을 보여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