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예술가
home
NEXTPROJECT
home

김영수

작가의 목소리
김영수,Field2410-D.1,2024,ㅡMixed soil & charcoal on panel,91x73cm,미판매
김영수,Field2406-D.1,2024,mixed soil & charcoal on canvas,91x73cm,미판매
작업노트
1.FIELD(crack), 2018~2020 작업
나는 판화print making와 페인팅painting으로 선행된 회화적 관념을 벗어나고자 새로운 매체를 탐구해왔다. 2008년 부터 이어 온 시리즈 ‘연주하다(Life is like playing instrument)’,내재된 기호(Inherent signs)’를 비롯한 이전의 작업들과 다른 좀 더 근원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선과 색으로 드러내고 보여주는 그간의 표현방식에서 기호로서의 시각적인 문법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 과정에서 ‘FIELD’는 먼저 판화로 밑그림이 그려졌다.
물감과 크랙 유도재, 바인더를 혼합해서 만든 재료가 캔버스 위에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서서히 crack이 생겨났고 크랙은 건조 과정 중에 크고 작은 기호 형상으로 변환되었다. 혼합과 건조, 보완 과정을 지나 작품으로 완성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1년~2년) 물감만을 사용하던 기존의 작업과는 다르게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여 크랙을 유도했고 이렇게 얻은 단색화minimal적 표현은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파토스의 기호적 은유를 대신한다.
크랙 작업은 이미지를 통해 유추되는 의미와 은유가 배제되는 형태로, 평면은 물질적 동질성을 나타낸다, 또한 통일된 화면을 통해 단순한 질서체계를 유도함으로써 최소한의 환원주의를 추구한 작업이다.
2.FIELD-흩어진 아무것들(Something Scattered),2021~2023 작업
나는 오랜 페인팅 시절을 뒤로 하고 이 땅 맨 아래에 버려지는 존재들을 우리 삶의 또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며 흙의 화면, 숯과 흙의 화면 그리고 숯만의 화면을 창출한다.
우리의 삶이란 보여 지거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는 자의 자기-감응 속에서 체험되는 방식, 즉 파토스pathos적인 실재로서 스스로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 여자로 살아 온 시간들은 기쁨과 슬픔의 역사이며 꿈과 상처의 퇴적물이다. 내 삶이 끝나면 그들은 한낱 한줌의 무기물로 산화될 것이다. 이 땅에 산화되어 무수히 흩어진 모든 것들은 어제를 살았던 너와 나, 우리의 흔적들이다. 발아래 버려진 것은 단지 잊혀 진 것일 뿐 사라지지 않는 수많은 삶의 기록들이다. 때론 까맣게 타고 때론 깨지고 부서지면서 살아 내거나 찬란히 살게 해주고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는 그 무엇들을, 버려진 숯 부스러기와 흙을 이용하여 애써 증언하고자 한다.
3.Field-Diaspora 2024~2025 작업
<Field-흩어진 아무것들>에 대한 작업을 좀 더 구체화 시킨 시리즈이다.
지구상에 살아온 모든 인간과 동물, 식물들은 자의에 의해서 혹은 타의에 의해서 이주하거나 권력에 의해 옮겨져 살아왔다. 인간의 역사는 이주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 많은 인간의 집단 또는 개인들은 전쟁이나 정치적 억압, 기후변화, 경제적 기회 등의 이유로 인해 태어나 살던 곳을 떠난다. 이주의 주체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더 나은 삶을 위한 망명, 혹은 난민의 형태로 떠돌며 흩어진다.
그 과정에서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한 수많은 보트피플boat people들이 바다에 수장되거나 국경을 넘는 불법 이민으로 배척 당하고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 외로운 섬처럼 떠 있기도 한다.
화면의 흙과 숯덩어리들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떠돌고 있는 존재들의 흔적을 대변한다. 모두가 돌아가는(회귀) 땅 위에서 이 땅에 살았었다는 형태적 증거이다. 결국 숯이라는 오브제가 의미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고난을 통한 차별적 존재의 존재 확인인 것이다.
<간단 평론>
회귀(回歸)-
재료의 확장은 현대미술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튜브 속의 물감을 짜내서 형상을 만드는 일이 능사는 아니다. 2만 년 전의 동굴벽화 이래로 해 볼 만큼 해봤다. 물감을 버리는 순간, 작업의 지평은 새로운 세계로 펼쳐진다. 무엇이든 물감처럼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림의 신세계요, 신나는 일이다.
있는 재료를 날 것 그대로 쓰기, 레이드 메이드의 탄생이다. 자전거 바퀴가 예술이 되고, 라면 상자가 예술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 서양의 레이드 메이드가 산업재료를 주로 쓰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인간 문명의 흔적들이기 때문이다.
김영수의 작업은 흙 혹은 숯 같은 재료를 쓴다. 모두 자연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런 예로는 이우환이 있다. 그는 가공하지 않은 돌 그 자체를 작업으로 끌어 드린다. 재료가 가지고 있는 물성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하는 것이 기본자세다.
흙, 숯을 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물성이 예술이 된다는, 될 수 있다는 확신은 그녀의 마음속 동양인에게서 발견되는, 집단 무의식의 자연스러운 드러남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생각의 진행 방향은, 그 많은 자연물 중에 왜 흙이어야 하고 숯이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소재이면서 대상이 되는 두 가지 물질은 공통분모로 묶을 수 있다.
적당한 하나의 단어로 ‘회귀’를 제시하고 싶다. 모든 사물은 시간의 풍화를 견디지 못한다. 사라짐은 자연스럽다. 숯은 사라지기 전의 마지막 모습일터이다. 크랙(crack)은 나무로서 살아온 삶의 무늬를 부끄럼 없이 드러낸다. 검은 숯 사이에 실핏줄 같은 선들이 어지럽다. 굵게 파인 노인 주름의 환유 같다. 그러나 그 선들은 어지럽지만 아름답다. 대체 아픔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아픔도 아름다울 수 있는 순간이 회기가 아닐까 싶다.
버려져야 할 대상들이 캔버스의 주인으로 들어와 앉았다. 그리고 하나의 의미가 되었다. 김영수의 의미는 ‘나’ 혹은 ‘우리’의 의미로 확장이 가능할까?
2022.1월 최건수(이미지 비평가)
ONLINE EXHIB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