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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6월 19일, 죽음으로부터, 소해

【소해 리바이브】
전시기간 : 2026. 6. 18 ~ 2026. 6.22
작업의 첫인상은 이러했다. 화면에 발리기 전, 팔레트 위에 떠 있는 물감의 덩어리들을 무심코 보았는데, 어떤 닮은 모습을 보는것 이다. 하늘에 펼쳐진 구름에서 강아지를, 천사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일부러 흐려 환상과 불안이 한 화면에서 번갈아 떠오르게 한다. 그를 위해 붓은 담대하고 두텁다.
화면의 위쪽 3분의 2지점은 밤인데, 검푸른 어둠이 내려앉고, 그 아래에서 분홍과 황토와 자주가 끓다가 풀어지며, 한 사람의 형체가 잠시 잔류하다 유령처럼 흩어진다. 왼편엔 검은 수직의 기둥, 그 곁을 따라 흐르는 푸른 세로 붓질. 아래로는 물감이 흘러내려 젖은 길처럼 번진다. 작가는 이 어둠을 요가의 마지막 자세, "사바아사나"에서 길어 왔다고 적는다. 직역하면 시체 자세다. 전신을 바닥에 맡기고 자아의 작동을 잠시 끄는 자리. 의미도 판단도 주체도 물러나고, 다만 '지탱됨'만 남는 상태. 최소한의 생이며, 상징적 죽음의 자리다.
철학적인 요가 수행자는 이 자리에 제 발로 들어서지만, 같은 멈춤이, 때때로 우리에게는 절대 수행이라고 말할 수 없어 사고처럼 닥치는 날이 있다. 자아와 창의의 역동이 더는 작동하지 않고, 상징적인 죽음의 공포를 느낄 수 있는 그 자리에 떠밀려 들어갈 때, 우리는 그것을 향해 마치 방어기제처럼 이름부터 붙인다고 설명하고 싶다. 오래된 농담조로는 멘탈이 깨졌다 라고 말하고, 소견으로는 우울이라, 결핍이라, 회피라 부른다. 이러한 이름 붙임은 손에 잡히지 않는 영혼의 진동을 잠시 붙들어 진정시켜 줄수 있어 쓸모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특별히, 언어는 그 상태를 다 담지는 못한다. 진정한 회복이 필요하다는 감각마저 공포로 치환할 때가 있음을 돌아보자. 상징적인 죽음과 회복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언어 개념에 의탁해 버리는 것이다.
인간(人間)이라는 글자는 사람(人)과 사이(間)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늘 누군가의 사이에 비집고 선 존재라는 뜻일 테다. 그렇게 서 있으려면 두 가지의 동의가 필요하다. 한가지 동의는 바깥에서 온다. 취업, 합격, 승진처럼 사회가 건네는 인정. 다른 한가지는 안에서 온다.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자존. 이 둘이 태극의 두 빛처럼 실존을 구심점에 두고 맞물려 돌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으로 선다. 그리고 그 균형은 상호작용 속에서 무너지는 때가 올수 밖에 없는 것을 우리는 안다. 어쩌면 인간의 내면적 존립은 무너짐으로 시작되며, 무너짐으로 완성되지 않을까.
내 모습이 흡족하지 않고, 자랑스럽지 않아서, 이 순간을 함께 건너는 이들에게 미안해지는 밤이 있다. 아린 상처가 되는 그 흔들림을 떠올리자. 살갗이 아니라 실존에, 자존에 난 상처. 그리고 그것은 더 깊은 데까지 닿는다. 인간 안에 깃든 창조와 진보의 충동, 프로메테우스가 건넸다는 그 불, 굳이 이름 붙이자면 신성이라 부를 불씨까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것이다.
작가는 이 그림이 해소를 약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카타르시스도, 폭발도 없이, 다만 모호한 경계의 한 지점에 머문다고. 그 말을 따라가자. 화면은 정말로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거기서 한 발을 더 디뎌 보자.
자존이, 신성이 훼손되었다고 생생히 느끼는 일은 자신을 부정하는 시간으로 수렴한다. 그 점에서 그것은 작가의 상징적 죽음 "사바아사나"와 한 맥락이겠다. 여기서 출발하는 회복은 상처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아닐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인 자리에서 삶이 다시 스며들어, 이전과 다르게 배치된 나로 일어서는 일이다.
낮이 밤을 건너 다시 새로운 낮이 되듯, 탄생이 죽음을 지나 다시 탄생이 되듯, 상처가 회복으로, 파괴가 창작으로 돌아오듯이. 그림 아래로 흘러내린 물감은, 그 스밈의 자국처럼 이해한다.
이 순환은 함부로 이름 붙이기엔 너무 크다. 우울이라고도, 회복이라고도, 신성이라고도 끝내 다 부르지 못해야 한다. 이 아득함으로 그것은 우리를 가장 인간다운 자리로 불러낸다. 한 번 무너졌다 다시 서는, 그 사이의 사랑스럽고 신성한, 또 다시 무너지게 될 그 자리로. 또 다시 일어나게 될 그 자리로.
글 이지호, 아르테위드 발행인
DIRECTORIAL PERSPEC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