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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11월 27일, 고양이는 오직 존재한다, 클래시쿠스

【클래시쿠스】
전시기간 : 2025. 11. 28 - 2025. 12. 2
늘 이 방에는 고양이가 있다. 요구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 이 무해한 타자성은 김희태 회화에서 정서적 감도에 있어 중요한 균형을 만든다. 외부의 시선이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 고양이는 침묵의 상태로 주체 옆에 놓여있었으며, 가장 낮은 강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고양이는 화자의 방(내면)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무대(연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회화속 화자가 고립의 시간을 버티는 와중에 끝내 놓지 못하는 마지막 관계의 실마리로 , 고양이는 자리한다.
이 방의 뒤편에는 종종 무대적 커튼이 함께 등장하는데, 방이 내면의 공간이라면, 커튼은 외부 세계가 요구하는 ‘연기된 자아’의 은유이지 않을까. 이 둘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할 때, 회화적으로 주체는 “혼자이고 싶다”와 “그러나 여전히 나를 향한 시선이 있다” 사이에서 갈라진다. 작가는 이 분열을 정면으로 드러내기보다, 시리즈로 풀어내는 와중에 은근한 변주로서의 밀도로 감싸안으며 동시대적 고립의 미학을 만들어낸다.
인물의 신체는 길고 앙상하며, 삶의 무게에 익숙해진 듯한 기형적 비례를 갖는다. 이런 회화적 허용은 조형적 과장이 아닌, 화자의 감정이 몸을 먼저 밀어낸 자리처럼 느껴진다. 현이 떨리는 방향에 따라 몸의 외곽선이 조금씩 흔들리고, 그 떨림이 방 안의 공기를 서서히 공명시켜 인물의 길이와 질감을 조율하는 것이다. 오직 스스로만 들여다볼 수 있는 내면의 깊은 곳에서 천천히 늘어나는 긴 호흡처럼, 몰래 쉬는 한숨처럼, 스스로를 향한 작은 의식(儀式) 같은 제의적 몸짓의 뉘앙스가 화면 전체에 감겨있다.
현의 진동은 방 안에 고요히 가라앉고, 다시 화자의 몸으로 돌아오고 있다. 존재를 위한 소박한 예식의 현장속, 고양이, 커튼, 늘어진 신체는 서로를 삼키지 않은 채 잔존하며, 가장 사적인 방어기제로서 작가가 구축한 내면의 질서를 드러낸다.
글 이지호, 아르테위드 발행인
DIRECTORIAL PERSPEC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