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지견】
전시기간 : 2026. 1. 9 ~ 2026. 1. 13
화면은 작가의 견딤이 반복되며 밀도를 획득한 장소이지 않을까. 작업에 화자의 존재는 직접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문자는 읽히기 위한 배열이 아닌, 최후까지 남겨지기 위해 기입된 감도로서 응집된 조형을 구축하며, 이는 삶이라는 행위가 순수히 지속된 결과임을 드러낸다. 말이 충분하지 않았던 시간들, 감각과 개념이 언어를 앞질러 버린 순간들이 표면 위에 응축되듯, 슬픔에 저물어지지 않은 기록들은 화면 위에 흉으로 새겨졌다. 다시 피어날 꽃들을 위해 모든 감각을 쏟아붓는 마음으로 기입된 신음의 역사로써 말이다.
흰 바람벽에 모양을 댄 판대기, 한 방울씩 떨어지는 공허 끝에 마침내 희망하는 개화(開花)의 기록들. 꽃이 피고 짐에 인력(人力)이 어쩔 수 없었음을 기입하자. 영원인 줄만 알았던 감각의 결이 스며들어 그가 되는 것은 더러 영원이겠거니 하며, 나약한 심신은 낙화에 뉘일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모든 핌과 짐을 위해 슬픔을 노래하는 수밖에는 없었지.
개화의 성질은 잠시 드러났다가 다시 소멸하는 상태로 머문다. 피고 지는 일은 의지의 결과가 아니며, 그 반복 앞에서 주체는 개입하지 못한 채 감각과 의지를 소모한다. 작업은 희망이나 절망 따위를 선언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핌과 짐이 가신 후에도 남아 있는 슬픔과 사랑이, 마침내 형식과 이름을 거부하며 본질로서, 삶의 흔적으로서, 연약한 아름다움을 감당하는 방식으로 새겨지고 있겠다.
글 이지호, 아르테위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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