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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11월 21일, 대속자(代贖者), 역동하는 실재

【역동하는 실재】
전시기간 : 2025. 11. 21 - 2025. 11. 25
작업은 강렬한 색채와 분절된 형태의 레이어를 통해 화면의 운동성을 구축하며, 말이라는 특정한 도상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면서도 단순한 사실적 극화나 감정의 과도한 묘사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가 구축한 색의 충돌, 파열, 균열은 형상을 향한 감정적 단서가 아니라, 오히려 감상자가 이 작업 앞에서 사유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작품이 지닌 상징적 뿌리와 정서적 내적 구조—를 제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전통적으로 말이라는 도상은 귀족성, 권력, 위세, 경제적 상징자본을 지시하는 도구로 소비되어 왔다. 이러한 도상학적 역사성을 고려하면, 본 작업 역시 그러한 문화적 코드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다층적인 작품의 맥락을 단순화할 위험이 있으며, 오히려 작가가 선택한 ‘말’의 도상을 하나의 장식적 기표로 소비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이 작업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말의 재현 자체가 아니라, 그 형상을 둘러싼 회화적 환경의 구조다. 색채의 분출과 레이어의 파찰 속에서도 말의 형상은 일관된 정서적 긴장을 유지하며, 이를 통해 작가가 구축한 내면적 사유의 지점을 드러낸다. ‘자화상’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동일화 선언이 아니라, 말의 눈이 감상자를 응시하는 구조를 통해 주체-대상-관람자의 위치를 교차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즉, 말은 작가 자신이자 감상자의 심리적 대리물이 된다.
말의 시선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감상자를 일관되게 바라보고 있으며, 이 초연한 정서는 감상자를 작품 내부로 불러들인다. 이러한 응시는 고대 비극이 지녔던 ‘관조의 시선’을 연상시키며,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에서 서술된 “고통을 통과해 도달하는 지혜”의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고통—기억—정화—통찰이라는 비극적 순환은 작품 속 말의 존재 방식과도 맞물린다. 말의 눈빛은 장식적 주체의 표식이 아니라, 고통과 환희의 경계를 통과한 자만이 획득하는 존재의 무게, 그리고 관조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마지막으로, 색채의 드리핑과 분출되는 붓질은 화면에 정서적 해방감을 부여하며, 이것이 곧 작품의 정동적 결론을 이룬다. 말이라는 형상은 고정된 도상이 아니라, 색채 속에서 다시 생성되고 소멸되는 존재로 기능하며, 화면은 마치 숭배적 대상으로 정립된 우상이자 내면의 초상이 결합된 구조처럼 보인다. 이는 회화가 갖는 신화적 성격과 현대적 정동이 만나는 지점으로, 작품이 감상자에게 남기는 정서적 여운은 이 조형적 충돌 속에서 극대화된다.
글 이지호, 아르테위드 발행인
DIRECTORIAL PERSPEC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