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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7월 10일, 엄마가 된 삐삐, 균열하는 형체

【균열하는 형체】
전시기간 : 2025. 7. 10 - 2025. 7. 14
마블링 기법을 떠올리게 하는 작업은 작가가 부유하는 심상을 조심히 퍼 올린듯 조형의 번짐이 거의 우연성에 기대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흐름이 자유롭다. 색채는 명랑하나 드로잉에서 보이는, 의도적으로 흔들리는 화면은 무언가 결핍 된 것을 스스로 포착하고 치유(위로)하는 듯한 감상을 주는 것이 정서적인 특징이다. 이것은 마치 슈만의 유모레스크에서, 특히나 장조의 선율이 작곡가 스스로를 쓰다듬고 있는 듯한 감상을 주는 지점과도 교점이 있다. (예술가의 결핍은 많은 경우 감상의 강한 요점이 된다.)
장 미셸 바스키아 상징적인 낙서처럼, 비언어적 텍스트의 미학이 떠올려 지는 작가의 작업은 전형적으로 작가가 현실의 의미와 작업을 유리하지 않고 화면에 작가의 당사자적 서술을 징명하게 투영하고 있다는 것을 추상적 요소의 깊이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점은 감상을 이끈다.
작가는 영화 속 주인공 삐삐에 자신의 서사를 투영하여, 원형 서사에 ‘엄마가 된 삐삐’라는 변주를 던져 놓았다. 삐삐는 엄마가 없고, 다소 거칠지만 다정한 뱃사람인 아빠와 세상의 이모저모를 탐구하고 반응하며, 때로는 생전 보지 못한 엄마를 위해 그리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렇게 명랑한 색채의 삐삐가 남자를 사랑하고 아이가 생겼다. 그녀는 흰말을 타고 저 넓은 세상을 달려버리고 싶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양말을 신고 여름의 뜨거운 열정에 뛰어들고 싶기도 하지만 엄마가 된 삐삐는 자신의 사랑을 기다리기 위해 숫자를 세고 있다. 웃는 얼굴로, 내 자식의 일어섬을 위해 일부터 십까지를 계속해서 세어 가다 어느새 그 숫자가 셀 수 없이 빽빽해져 삐삐는 엄마가 되었다.
이 작업에 시선을 녹여내듯 긴 시간 바라보니, 어느새 작업은 나의 서사를 훑고 있다. 나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나의 엄마는 나처럼 예술에 민감하다. 어느 날, 어머니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을 듣는데, 어머니가 다정한 눈을 반짝이며 “음악에는 영혼이 있는 것 같아”라며 귀를 기울이는 모습에 감격과 동시에 이유 모를 미안함에 목이 막힌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도 이렇게 세상의 찬란함과 창조의 기쁨을 아는 특별한 여자인데, 우리를 위해 수 없이 숫자를 삼키었겠다. 나의 어머니도 삐삐의 청량함에 뛰어드는 대신에 내 입에 사랑을 집어넣었겠구나.
작가의 작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렇게도 해사로운 사랑이 내 목을 탁 막는다.
글 이지호, 아르테위드 발행인
DIRECTORIAL PERSPECTIVE